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준닌 덴노 (문단 편집) == 생애 == [[덴무 덴노]]의 아들 [[토네리 친왕]][* 덴무 덴노의 명령에 따라 《[[일본서기]]》를 편찬한 인물로, 준닌 덴노가 생부라서 추존하려 했으나 상황 [[코켄 덴노]]의 반대로 추존하지 못했다.]의 7남이었기에 천황의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상황인 [[쇼무 덴노]]가 추천한 태자 후나도 왕이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폐위되자 당시의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에미노 오시카츠|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강력한 추천으로 황태자가 되었다. 이후 758년 어머니의 병을 간호하기 위해 코켄 덴노가 양위하면서 천황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코켄 상황의 어머니 [[코묘 황후]]가 사망하자 준닌 덴노와 코켄 상황 및 승려 도쿄 간의 불화가 표출되면서 권력 투쟁이 심해졌고, 결국 권력은 코켄 상황이 다시 잡게 되었다. 762년 코켄 상황이 스스로 '''국가대사상벌권'''을 행사하면서 준닌 덴노로부터 천황 지위를 박탈하려는 선언을 했고, 그 일로 인하여 764년, 준닌 덴노가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난을 통해 국면을 타개하려고 했지만 발각되어 실패하게 되었다. 후지와라노 나카마로가 죽음을 맞자 지지자들을 잃은 준닌은 폐위되었고, 어머니 타이마노 야마시로(当麻山背)와 함께 유폐되어 버렸다. 그는 도주를 시도했지만 붙잡혔고, 유배지에서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준닌의 폐위 이후 코켄 상황이 다시 쇼토쿠 천황으로 즉위했다. 사실 '준닌'(淳仁)이란 시호는 사후 천 년도 더 지난 [[메이지 덴노]] 때인 [[1870년]] [[8월 20일]] [[고분 덴노]], [[주쿄 덴노]]와 함께 복위되면서 받은것으로 이전에는 '아와지 폐제(淡路廢帝)' 로 불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